"포괄임금제 거절할 수 있는 청년 있을까요" 본문
규제 4년째 미루고 있는 文 정부 규탄 목소리
“사업주가 내민 포괄임금제 근로계약서를 거절할 수 있는 청년은 없다”
참여연대가 10일 민변 노동위, 알바노조, 청년유니온, 화섬식품노조 등과 함께 개최한 ‘포괄임금제 규제 촉구 기자회견’에서 김강호 청년유니온 정책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연장근로수당 등을 기본급에 포함해 주는 포괄임금제가 노동현장에서 광범위하게 악용돼 장시간·공짜 노동 관행이 근절되지 않고 있지만 노동자가 이에 저항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단체들은 장시간 노동 관행으로 과로사가 끊이지 않고 있는데도 문재인 정부는 2017년 10월까지 만들겠다고 한 포괄임금제 규제 가이드라인을 4년째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포괄임금제가 ‘21세기 노비문서’ ‘인간자유이용권’이라면서 정부가 포괄임금제 규제 지침을 하루 빨리 발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각 단체들은 포괄임금제가 노동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돼야 하지만 사실상 모든 직종에 적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포괄임금제는 연장·야간·휴일 근로를 비롯한 초과근무수당을 월급에 포함해 일괄 지급하는 임금지급 방식을 말한다. 대법원 판례상 기상 조건에 따라 노동시간이 달라지는 염전회사 직원, 트랙터 트레일러 운전원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된다.
하지만 포괄임금제와 관련한 규제가 법령이나 제도에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은 탓에 사업주들이 악용하는 경우가 많아 노동자들은 할 수 없이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고 단체들은 강조했다.
김 팀장은 “3~4년 전에 청년유니온에 한 노동자가 ‘연장근무하고 있고 휴일에도 근무하고 있는 데 수당을 받을 수 있냐’고 물어왔다”면서 “일한만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지만 결국 그 노동자는 수당을 못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 분이 장시간 노동했지만 일한 만큼 제대로 임금을 받을 수 없던 건 포괄임금제 때문이었다”면서 “그런데 4년이 지난 지금도 청년들에게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팀장은 “어떤 편집디자이너는 포괄임금제 때문에 10년 동안 임금이 거의 같은 수준이었고, 사무직은 물론 생산직, 스타트업, 공공기관에서도 포괄임금제가 시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고용노동부의 ‘2020 포괄임금제 실태조사’를 보면 지난해 포괄임금제 적용사업체는 조사 대상 2522곳 중 749곳(29.7%)에 달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취업이 더욱 어려워진 상황에서 포괄임금제 문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청년 노동자는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 팀장은 “장시간 노동을 통해서라도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처지에서 포괄임금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퇴사까지 고려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르바이트생이 많이 근무하는 패스트푸드 등의 사업장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신정호 알바노조 위원장은 “한 패스트푸드 매장 어떤 매니저의 경우, ‘아침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이 정상이지만 오후 10시까지 일하기도 했다”면서 “추가로 6시간 일하지만 연장시간으로 근무를 올리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절대적인 업무량이 많아 해당 시간에 업무를 끝낼 수 없는 상황에 몰려 ‘울며 겨자먹기’로 추가 근로를 하는 데도 그에 대한 수당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패스트푸드 업계 모두에 해당하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신 위원장은 “어떤 매장은 야간만 전담하는 매니저를 뽑는다는 공고를 내면서도 새벽 4시 이후 임금은 주지 않겠다고 명시했다”면서 “대놓고 연장도 인정 안하고 그 시간에만 일하라는 건데, 그 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소요시간, 인원이 필요한데 그냥 있는 사람이 주어진 업무를 다해야 집에 갈 수 있는 구조다. 심지어 어떤 곳은 퇴근을 찍고 일을 하라는 지시가 내려진다”라고 덧붙였다.
노동자들이 이처럼 장시간, 공짜 노동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문재인정부는 출범 초기 약속과 달리 ‘뒷짐’만 지고 있다고 이들은 지적했다.
청년유니온 등 7개 단체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포괄임금제를 활용하는 사업장은 노동 시간을 제대로 측정하지 않아 사실상 주52시간 상한제가 무력화되고, 노동시간과 관계없이 임금이 고정돼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된다”면서 “실제 일한 시간만큼 임금을 받지 못하는 공짜 노동도 가능해져 극히 제한적으로 쓰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하지만 문재인정부는 국정과제이기도 한 포괄임금제 규제 지침 발표를 무려 4년째 반복해서 미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2017년 8월에 2개월 안에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발표했고, 2018년 4월, 6월, 2019년 3월에도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규제 지침을 밝히겠다고 했지만 가이드라인은 발표되지 않았다. 또 포괄임금제 규제 계획을 묻는 참여연대 질의에 고용노동부는 지난 4일 ‘전문가 논의, 노사 의견수렴 등을 거쳐 지침의 내용 및 발표 여부와 시기 등을 결정할 계획’이라고만 답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노동자들의 끊임없는 과로사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장시간 노동과 공짜 노동을 야기하는 포괄임금제”라면서 “정부가 세계 최고 수준의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포괄임금제를 시급히 규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일보 이희경 기자
출처 http://www.segye.com/newsView/2021081051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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