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극복 카카오의 마스터 피스, 그리고 봄(春) [IT큐레이션] 본문
AI 경쟁 지연, 자회사 매각 내홍 극심
'국민 메신저' 기반 회복탄력성 주목, 실행력·신뢰 회복이 관건
'카카오 제국'이 흔들리고 있다.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과거의 영광은 빛이 바랜 지 오래다.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기술 패러다임 전환기에 경쟁사들에 비해 뒤처지고 있다는 냉정한 평가와 함께, 핵심 자회사들의 매각·분사를 둘러싼 내부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며 창사 이래 가장 혹독한 시련을 맞고 있다.
그룹 전체가 방향성을 잃고 표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다만 벼랑 끝에 선 카카오에게도 반격의 카드는 남아있다. 바로 대한민국 디지털 생태계를 장악한 '카카오톡'이라는 압도적인 플랫폼과, 이를 기반으로 성공 신화를 써 내려왔던 특유의 '플랫폼 DNA'와 데이터다.
가보지 못한 길 AI
카카오 위기론의 핵심 축 중 하나는 AI 경쟁력 약화다. 네이버가 자체 LLM '하이퍼클로바X'를 공개하고 검색 등 서비스에 발 빠르게 적용하는 동안, 카카오는 자체 모델 'KoGPT' 개발 지연과 핵심 인력 이탈이라는 악재에 시달렸다.
2021년 60억 매개변수, 2000억 토큰 규모의 한국어 모델을 공개하며 기대를 모았지만, 성능을 100배 향상시킨다는 KoGPT 2.0 공개는 2023년 10월 목표 시점을 훌쩍 넘겨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개발을 주도하던 김일두 전 카카오브레인 대표의 퇴사는 내부적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절대적인 투자 규모에서도 격차는 뚜렷하다. 2024년 4분기 기준 카카오의 매출액 대비 AI 투자 비중은 3.6%에 불과, 40~70%대를 쏟아붓는 메타,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와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한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AI 전환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경고와 함께 "성숙기 기업인 코카콜라(4.3%)와 유사한 투자 패턴"이라는 뼈아픈 지적까지 나온다.
물론 규모의 경제가 미친듯이 벌어지는 글로벌 AI 출혈경쟁에 일찌감치 뛰어들 필요는 없다. 카카오의 늦은 타이밍은 오히려 AI 비즈니스 구축에 있어서는 유리한 국면이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AI 인프라 구축을 위한 로드맵 자체가 흐릿해지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라는 분석이다.
부랴부랴 AI 전담 조직 '카나나'를 신설하고 1엑사플롭스급 슈퍼컴퓨터 인프라 투자를 단행했지만, 이미 벌어진 격차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카카오는 오픈AI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AI 오케스트레이션'(자체·오픈소스·파트너사 모델을 최적 조합해 활용) 전략으로 선회했지만 이는 자체 기술력 부재의 방증이자 글로벌 기업에 대한 기술 종속 심화, 국내 사용자 데이터 주권 침해 우려라는 새로운 위험 요소를 안게 됐다.
오픈AI와의 협력을 통해 서로가 원하는 전략적 포인트를 영악하게 가져간다면 우려는 해소할 수 있으나, 아직은 지켜봐야 할 것들이 많다.
자회사 매각 둘러싼 '내부 전쟁'
그룹의 근간을 뒤흔드는 자회사 구조조정 논란도 위기다. 과거 '문어발식 확장'과 카카오게임즈·뱅크·페이 등을 연이어 상장시킨 '모자 이중상장' 전략이 시장의 불신과 복잡한 지배구조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분위기다.
결국 카카오는 '선택과 집중'을 내걸고 비주력 사업 정리에 나섰다. 하지만 그 대상이 포털 다음(Daum),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VX 등 핵심 자회사들로 알려지면서 내부 갈등이 폭발하고 있다.
먼저 다음(Daum) CIC다. 카카오와 다음의 2014년 합병 이후 네이버에 밀려 점유율 2%대로 추락한 다음 CIC 분사 추진은 '사실상의 매각 수순'이라는 반발에 부딪혔다. 카카오의 정체성과도 같은 상징적 자산을 두고 벌이는 갈등은 후유증이 클 수밖에 없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상황은 더 복잡하다. 타파스, 래디시, 멜론, SM엔터 등 공격적 M&A로 몸집을 불렸지만 멀티 레이블 전략은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결국 11조 원대 기업가치 추정에도 실적 부진과 IPO 지연으로 매각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며, 2대 주주인 사모펀드(PEF) 앵커에쿼티파트너스(지분 약 12%)의 존재도 불확실성을 더한다는 평가다.
카카오모빌리티와 카카오VX도 마찬가지다. 과거 MBK파트너스 매각이 무산됐던 카카오모빌리티(2대 주주 PEF TPG, 약 29%)와 실적 부진으로 매각이 공식화된 카카오VX(2대 주주 PEF) 역시 노조의 강력한 반대와 PEF에 대한 경계심이 팽배하다.
결국 노동조합(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카카오지회 '크루유니언')은 연일 기자회견과 피켓 시위를 벌이며 총파업까지 경고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단순한 고용 안정을 넘어선다. "국민의 일상과 밀접한 플랫폼 서비스의 공공성을 훼손하고, 단기 수익에만 혈안이 된 PEF에 회사의 미래를 넘길 수 없다"는 것이다. 홈플러스 사례를 들며 구조조정 공포를 호소하고, 경영 쇄신 방향이 국민 기대와 반대로 가고 있다고 비판한다. 특히 회사의 중대 결정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는 '소통 부재' 상황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했다.
이러한 연이은 악재는 카카오의 기업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혔다. '골목상권 침해' 논란에 이어 리더십 스캔들, AI 기술 경쟁력 우려, 극심한 노사 갈등까지 겹치면서 브랜드 가치는 물론 우수 인재 유치, 투자 심리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조직 내 사기 저하와 불신 확산은 혁신 동력을 갉아먹는 요인이다.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주가는 불안정한 흐름을 보이고 있으며, 증권사들의 목표 주가와 투자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반격의 열쇠 '카카오톡 플랫폼'과 회복탄력성
절망적인 상황처럼 보인다. 그러나 카카오에게는 여전히 강력한 무기가 있다. 바로 월간 활성 이용자 수 4800만 명 이상을 자랑하며 지금도 실용적인 데이터를 마구 뿜어대는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이다. 이 압도적인 플랫폼과 여기서 파생되는 방대한 데이터, 그리고 커머스·콘텐츠·모빌리티 등 이미 구축된 서비스 생태계는 카카오의 본질적인 '회복탄력성(resilience)'의 원천이다. 결국 초심에 답이 있다는 뜻이다.
특히 과거 모바일 전환기에 기민하게 플랫폼을 선점하고 사용자 니즈를 파고들어 성공 방정식을 만들었던 카카오의 '날카로운 성공 본능'이 다시 발휘될 기회는 바로 이 플랫폼에 있다. AI 기술을 카카오톡 생태계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통합하느냐가 반격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AI의 플랫폼 심층 통합이 필요하다. 카카오톡 채널, 비즈보드, 알림톡 등 기존 비즈니스 도구와 AI를 결합해 사용자 경험을 고도화해야 한다. AI 비서 '카나나' 등을 통해 정보 탐색, 쇼핑, 예약 등 일상 활동을 카카오톡 안에서 더 편리하게 만들 수 있다. 이를 통해 초개인화된 경험을 끌어내는 전략이 나와야 한다. 방대한 플랫폼 데이터를 (개인정보 보호 원칙 아래) 활용해 메시지, 콘텐츠 추천(Helix 푸시), 쇼핑탭 제안, 광고 타겟팅 등 모든 접점에서 사용자 맞춤형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다만 거대한 비즈니스는 역시 B2B다. 그리고 카카오가 노릴 수 있는 지점은 지능형 B2B 솔루션이다. AI 기반 챗봇, 정교한 타겟 마케팅 지원, 스토어 운영 최적화 등 파트너사에게 실질적인 가치를 제공하는 B2B 솔루션을 강화해야 한다.
세부적으로는 AI 리더십 재구축이 절실하다. 특히 AI 전략 방향을 명확히 하고 투자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성공적인 구조조정으로 확보된 재원을 R&D에 집중 투입하고, 오픈AI 파트너십 활용과 자체 핵심 기술(KoGPT 등 한국어 특화, 버티컬 영역) 강화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여기서 윤리적 AI 및 데이터 거버넌스 확립은 기본이다.
내부 갈등 봉합 및 신뢰 회복을 위한 조직문화 개편도 필요하다. 카카오에 제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음에도 최근 문제가 되는 지점이다. '선결정 후통보'식 소통에서 벗어나 계획 초기부터 구성원 및 노조와 투명하게 소통하는 채널을 제도화해야 한다. PEF 매각 외에 전략적 투자자 유치, MBO/EBO, 단계적 분사, 자체 턴어라운드 등 다양한 대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진정성 있는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노조의 '공공성' 우려를 경청하고 이를 경영 및 구조조정 계획에 반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플랫폼 잠재력 극대화는 이 모든 역량을 집중시켜야 하는 '폭발점'이다. 무엇보다 카카오톡이라는 핵심 자산의 가치를 극대화해야 한다. 독점적 지위에 안주하지 않고, AI 기반의 혁신적인 기능과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실험하며 '끊임없이 진화하는 플랫폼'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결국 핵심은 AI 역량 강화와 내부 안정화라는 두 축을 동시에, 그리고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데 있다. 기술 개발만으로는 내부 불안을 잠재울 수 없고, 내부 안정만으로는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없다. 이 두 과제가 상호 연결되어 선순환 구조를 만들 때, 비로소 진정한 위기 극복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중심에는 '신뢰 회복'이 자리해야 한다. 내부 구성원, 사용자, 투자자, 그리고 사회 전체와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진정성 있는 노력 없이는 어떠한 전략도 성공하기 어렵다.
궁극적으로 카카오의 미래는 위기 속에서 올바른 전략적 선택을 하고 이를 얼마나 강력하게 실행하는지에 달려 있다. 압도적인 플랫폼이라는 기반 위에서 AI 날개를 달고, 내부 갈등을 봉합하여 운영 효율성을 높인 '새로운 카카오'로 거듭날 수 있다면, 현재의 혼란을 넘어 더욱 성숙하고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도약할 잠재력은 충분하다. 카카오가 특유의 '플랫폼 DNA'와 회복탄력성을 바탕으로 이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다면 봄은, 반드시 온다.
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rgdsz@econovill.com
출처 https://www.econovill.com/news/articleView.html?idxno=691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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