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IT·게임사의 밑바닥 운영법인 "우린 무늬만 정규직" 본문
대표법인, 지주사보다 위상 더 커
계열법인 두고 그 밑엔 ‘운영법인’
저비용으로 운영 업무 맡기려 분사
임금·복지 차별에 “사실상 하청”
“회사 통합교섭 나서야 문제 해결”
한국 사회에서 카카오, 네이버, 넥슨, 넷마블 등 주요 정보기술(IT)·게임사들은 더 이상 성장성 높은 중소·벤처기업이 아니다.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올해 네이버(자산 27위)·넥슨(34위)·넷마블(36위)이 자산 10조원 넘는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새로 포함되는 등 카카오(18위)와 함께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이 됐다. 그러면서 이들의 계열사 지배구조도 본격적으로 감시 대상에 올랐는데 놀라운 것은 이들의 계열사 수였다. 지난 4월 기준으로 공정거래위원회 분류상 카카오는 118개, 네이버는 45개, 넥슨은 18개, 넷마블은 23개의 계열사가 있었다. 문어발식 경영으로 사업을 확장하던 재벌들과 비슷한 수준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이들의 계열사가 많은 데는 IT·게임업계의 특성이 크게 작용한다. 새로운 서비스나 게임 출시를 앞두고 해당 사업부를 자회사로 분사시키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이는 좀 더 가벼운 조직으로 신속하게 상황에 대처하고, 해당 사업의 위험을 분산하는 등 효과가 있었다. 여기에 유망한 스타트업을 인수해 지분 관계상 자회사로 두는 일도 많아 계열사는 더욱 늘어났다.
하지만 그 자회사들 중에는 IT·게임사들이 적은 비용으로 회사 운영 업무를 맡기려고 분사시킨 운영법인들도 있다. 이들은 100% 자회사에 그 회사 업무만 맡는 일이 많기 때문에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고용 형태가 정규직이라서, 대기업 사내하청이나 대형마트 불법파견과 같은 차별 대우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이를 두고 노동계는 IT·게임업계 특유의 ‘자회사를 통한 간접고용’이라고 비판한다.
IT 기업집단 내 수직 구조
IT·게임사 노조들은 계열사들을 유형에 따라 크게 대표법인과 계열법인, 운영법인으로 분류한다. 대표법인은 카카오·네이버·넥슨·넷마블 등 말 그대로 가장 널리 알려지고 사업에서나 지배구조에서 기업집단을 대표하는 회사다. 지주사는 아니지만 지주사보다 더 큰 위상을 갖는다. 대표법인 밑에는 계열법인이 있다. 네이버웹툰, 카카오페이처럼 대표법인에서 새로운 사업으로 분사하거나, 카카오스타일처럼 원래 다른 회사였지만 지분을 인수해 새로 자회사로 편입된 회사들이다. 계열법인들의 관계는 서로 수평적이다.
가장 아래에 운영법인이 위치한다. 이들은 대표법인과 계열법인에서 고객관리(CS), 사무자동화(OA), 경영지원, 서버관리 등 운영 업무 중 일부를 일감으로 받는다. 네이버의 컴파트너스나 카카오의 케이앤웍스처럼 사명에 대표법인 이름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표법인이 자사 이름을 빌려주고 브랜드 사용료를 받는 계약도 맺지 않는 것이다.
“말이 자회사지, 하청업체”
서승욱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IT위원장은 지난달 28일 민주노총 토론회에서 “회사 규모가 작은 시기엔 내부 인원을 통해 내재화하거나 외부 계약으로 진행하다 규모가 커져 인력 확충이 필요하면 운영법인을 자회사로 설립해 간접고용을 확대한다”고 설명했다. 업무 형태와 범위, 내용, 심지어 인사도 실질적으로 모회사가 컨트롤하는 간접고용이라는 것이다.
서 위원장은 “운영법인 매출의 대부분은 대표·계열법인에서 발주한 업무의 대가인 용역수수료이기 때문에 사실상 원·하청 관계와 같다”며 “수수료는 유사한 외부업체에 비교해 책정되기 때문에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기술을 개발하거나 거래처를 계열법인 외로 다변화하지 않아 회사가 성장할 기회가 없다”고 했다.
운영법인 직원들의 급여는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렀다. 예를 들어 카카오의 고객센터와 데이터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운영법인 케이앤웍스는 카카오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매출의 100%가 같은 기업집단 내에서 발생하는데, 지난해 평균 임금은 3160만원, 평균 복리후생비는 440만원으로 카카오(8070만원, 1380만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회사의 상여금에서도 소외된 경우가 많았다.
네이버의 디자인 업무를 맡는 자회사 운영법인의 A씨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우리도 디자이너인데 창의적인 업무는 다 네이버에서 하고, 섬네일을 만드는 것과 같은 단순 업무만 하니 내부에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회사 실적이 좋아졌는데, 우리한테는 인센티브 얘기가 없다가 노조가 어필한 후에야 네이버 직원의 5분의 1 수준으로 책정됐다”고 했다. 그는 “말이 자회사 정규직이지, 사실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대표법인 책임 높여야”
업계에선 IT·게임업체의 사회적 위상이 높아진 만큼 지배구조와 고용 형태에서도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카카오·네이버가 기존 산업 영역으로 빠르게 진출하면서 이러한 ‘자회사 간접고용’ 형태가 더욱 확산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서 위원장은 “요즘 공공기관의 자회사를 통한 비정규직 정규직화도 간접고용과 최저임금 고착화 등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IT·게임업계 노조들은 회사가 빠르게 세워졌다 사라지는 특성을 고려해 기업별 노조가 아니라 기업집단별로 통합된 노조를 꾸리고 있다. 대표·계열·운영법인을 가리지 않고 한 노조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측은 여전히 회사별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노동계는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대표법인의 책임하에 회사가 통합 교섭에 나서도록 해야 ‘자회사 간접고용’으로 인한 문제가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경향신문 조미덥 기자
출처 https://www.khan.co.kr/economy/economy-general/article/202110042138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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