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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노동자 갈아 넣는 블랙기업 펄어비스 디버그하겠다”

krewunion_ 2020. 5. 5. 03:33

화섬식품노조·정의당, 권고사직 논란 ‘펄어비스’ 근로감독 요구

24일 기자회견서 IT·게임 노동자 노조 설립 독려

24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화섬식품노조와 정의당이 기자회견을 열어 펄어비스 사측에게 ▲권고사직 대상자 복지 약속 ▲노동인권 보장하는 인사노무관리 마련 등을, 고용노동부에는 ▲펄어비스에 대한 근로감독 즉각 실시 ▲재량근로제 확대 가이드 폐지 등을 요구했다. 더불어 IT·게임 노동자들에게 제보를 요청하면서 노조 설립을 독려했다.

 

류호정 정의당 IT산업노동특별위원장은 2016년 넷마블(게임회사)의 과로사와 2018년 에스티유니타스(인터넷 강의 업체)에서의 자살을 상기시키고, “청년노동자들이 비극적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이번 (펄어비스) 제보 안에도 담겨 있었다”고 말했다.

 

서승욱 화섬식품노조 IT위원회 카카오지회장이 제보를 바탕으로 ▲근로기준법 위반 ▲구시대적 조직문화 ▲상시적인 고용불안 등 문제점을 3가지라 말했다. 서 지회장은 “권고사직 빙자한 부당한 해고 반복”과 “재량근로제를 악용”한 장시간 노동을 지적했다. 또 “직장 내 갑질, 괴롭힘 등 조직문화가 팽배”했고, “기간제 노동자 비율이 업계 평균보다 5배나 높고, 근속연수는 업계 평균의 반도 되지 않았다”고 발언했다. 화섬식품노조와 정의당은 전·현직 펄어비스 노동자 10명 이상에게서 온라인과 직접 만남으로 받은 제보내용을 공개했다.

 

임영국 화섬식품노조 사무처장이 국회 소통관에서 진행한 “IT노동자 갈아 넣는 블랙기업 펄어비스 디버그하겠다” 기자회견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양질 일자리 창출’ 기업에서 권고사직 횡행

 

“권고사직 중 당일 퇴사가 아닌 경우를 거의 못 봤습니다”
“‘저 오늘 나가래요. 안녕히 계세요’, 이런 대화가 이상하지 않습니다. 매일같이 야근했는데 당일 통보받아서 서럽게 울던 분도 생각나네요”
“말이 권고사직이지. 해고나 다름없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프로젝트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매출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요”
“강도가 손에 칼을 들고 가방을 빼앗으려 할 때, 가방을 지킬 수 있을까요? 업계를 떠나려는 게 아닌 이상 강하게 반발하기가 힘들어요. 이직할 때 불이익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거든요”

 

임영국 화섬식품노조 사무처장은 “당일 권고사직이 일상적으로 벌어질 만큼 ‘쓰고 버리기’가 반복돼왔는데도, 정부는 바로 그렇게 버려지는 노동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며 작년 말 ‘양질 일자리 창출’로 대통령 표창을 시상한 사실을 비판했다. 펄어비스는 2017년 12월 320여 명이던 임직원을 1년 뒤 640여 명으로 약 2배 늘렸다. 2017년에 게입업계 최초로 포괄임금제를 폐지했으며 ▲자녀 1명당 양육비 월 50만 원 지급 ▲회사 인근 거주 시 거주비 월 50만 원 지급 ▲주택자금 대출 이자 지원 ▲난임 부부 의료 비용 지원 ▲부모 요양비 지원 등 복지 정책을 업계 최고 수준으로 시행했다. 이런 점을 높이 평가받아 지난해 12월 23일 ‘일자리창출 유공 정부포상’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펄어비스 직원이 ‘블라인드’에 쓴 글. 논란이 촉발된 최초글은 삭제된 상태다.

 

초과노동, 재량근로 문제 “근로감독 즉각 실시해야”

 

“다른 직원들의 근무기록도 서로 볼 수 있어요. 기록상으로는 다들 퇴근했는데, 사무실에 함께 앉아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자주 겪었습니다.”
“겨우 승인받은 야근도 52시간을 초과하면 더이상 기록할 수 없어요. 회사에서는 52시간을 넘지 않게 주의하라는데, 주어지는 업무량은 야근을 하지 않고는 해낼 수 없을 만큼 많기 때문에 결국 기록 없이 일하게 됩니다. 이걸 따라가지 못하면 권고사직을 당하는 거예요.”
“제 주위에 반강제적으로 재량근로를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재량근로 대상자가 되면 주말 출근은 물론이고 자다가도 출근을 해야 합니다. 대상자는 평소 주어진 업무를 잘 수행하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지정됩니다. 그러다 권고사직을 당하시는 분들은 정말 일회용품처럼 쓰이다 버려지는 거죠.”

임영국 사무처장은 “주 52시간제 후퇴할 때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에서 분명히 얘기한 게 있다”며, “노조 없는 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인권은 누가 지켜주느냐”란 질문을 상기시켰다. 이어 “그게 지금 우리 눈앞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류호정 위원장은 “고용노동부는 블랙기업 펄어비스에 대한 근로감독을 즉각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재량근로제 확대를 종용하는 가이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력직이든 신입이든 존중받지 못해요”

 

“회사는 수평적이라고 홍보하지만 수평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수직적이고 강압적입니다. 재직기간이 긴 일명 ‘성골’들의 갑질이 심한 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있는 곳에서 소리 지르고 면박을 줍니다. ‘학원에서 뭐 배웠어’, ‘네가 뭘 알아’, ‘넌 네가 일을 잘한다고 생각해?’ 같은 말들이요”
“경력직이든 신입이든 존중받지 못해요. 경력직에게는 ‘펄어비스만의 스타일’을 운운하면서 무조건 따르라고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분들은 영문도 모르는 채 자존감을 박살 내는 말을 들어요. ‘네가 할 줄 아는 게 뭐야’, ‘여기 왜 들어왔냐’ 근처에서 듣고 있으면 기가 찹니다. 신입사원들이 위축되어 울다가 퇴사하는데 게임업계가 원래 이런 건 줄 알까 봐 걱정입니다”
“매일 같이 야근을 하다 보니 근처로 이사 오는 경우가 많아요. 회사의 복지 중에 주거 지원 50만 원이 있기도 하거든요. 당장 잘릴 줄 모르고 이사한 후 권고사직 받으면, 당장 주거비부터 걱정하게 돼요”

류호정 위원장은 이와 관련해서 펄어비스에게 ▲(해고와 다름없는) 권고사직 대상자에 대한 (본문 위에서 설명한) 복지 약속 ▲인사노무관리 체계 전반에 노동인권을 보장하는 방안 마련 등을 요구했다.

 

2019년 3분기 기준 펄어비스의 평균 근속연수는 1.7년이고, 기간제 노동자 비율은 유일하게 20%가 넘는다. 네이버, 카카오, 넥슨 코리아, 엔씨소프트 등 <중앙일보>가 조사한 주요 IT·게임 기업 20곳의 평균 근속연수는 4.16년이다. 2년이 되지 않는 기업은 펄어비스가 유일하다. <한겨레>에 따르면 이에 대해 회사 측은 “2017년께 해외시장에 진출하면서 회사가 급성장했고, 그만큼 인력을 많이 뽑았기 때문에 (신규 채용이 적은) 타사와 평균 근속연수를 단순 비교하긴 어렵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직원 수가 250명이 안 됐던 2017년 6월에도 평균 근속연수는 1.6년이었다.

(관련기사 : 일자리 창출 표창받고 뒤에선 상시 권고사직...게임사 펄어비스의 두 얼굴)

 

펄어비스 “개선하겠다” & 화섬식품노조 “손 잡아드리겠다”

한편, 이번 사안은 이번 달 중순경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펄어비스의 ‘당일 권고사직’ 게시글이 올라오면서 알려졌다. 이후 지난 19일, 정경인 펄어비스 대표는 사내 게시판을 통해 당일 퇴사 문제를 인정하고, 인사 정책 등에 있어 절차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펄어비스는 ▲퇴사 프로세스 및 관련 절차 준수 ▲저성과자 및 업무 방식 부적응자에 대한 관리 방안 마련 ▲권고사직 대상자에 대한 복지 혜택 중단 3개월 유예 등을 개선안으로 내놓았다.

 

류 위원장은 이 약속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펄어비스의 약속 이행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감독해달라”고 요청했다.

오세윤 네이버지회장이 이후 계획을 설명했다. 오 지회장은 “(노조를 만든) 네이버, 카카오, 넥슨, 스마일게이트는 펄어비스와 같은 문제를 겪지 않는다”며, “(노조를 만들겠다 나선다면) 우리가 손을 잡아드리겠다”고 말했다. 또 “구글 설문, SNS 제보 등을 통해 사례를 취합하겠다”며, “제보해달라고”고 말했다. 제보는 여기(IT업계 디버그를 위한 제보)에서 할 수 있다.

 

한편, 펄어비스는 ‘검은사막’을 대표작으로 하는 게임회사로 2010년 설립됐다.

 

원문 : 노동과 세계
worknworld.kctu.org/news/articleView.html?idxno=40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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